부산 근교에 위치한 작은 수원지인 법기수원지는 넓진 않지만 크고 오래된 수목들로 대형의 미를 느낄수 있는 곳임과 동시에 산림욕을 하며 산책을 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산책 소요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멀리서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한번쯤 연인과 혹은 가족과 함께 걸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20~30분 소요).
법기수원지 건설의 역사와 개방
법기수원지의 댐은 흙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 5년간(1927~1932)에 걸쳐 건설되었습니다. 1927년 12월 20일 당시 중앙지인 동아일보에 양산 법기리 상수원지 기공식 소식과 수몰지 주민의 이주대책 등이 거론된 기사가 크게 실렸다고 합니다. 그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서는 국가적 대규모 토목공사였던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32년 법기수원지의 완공 후부터 근래인 2011년도까지 한 번도 개방된적이 없다가 2011년 7월 15일에 일부에 한해 개방함으로써 79년 만에 일반인들에게 드러나게 된 곳입니다. 비록 일제의 주도하에 댐이 건설되었지만 댐 건설의 주역은 당시 강제동원되었던 우리의 선조들입니다. 이제 근대문화유산이 된 법기 수원지는 우리가 아끼고 보살펴 역사적 교훈의 본보기가 되는 유산으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겠습니다.
법기수원지 가는 길
양산에서 정관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차를 달리다 보면 법기수원지로 빠지는 길이 있어서 자가용을 이용하면 접근성이 좋은 편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범어사 전철역에서 출발하는 마을 버스들이 있습니다.
*대중교통 이용시
범어사 전철역에서 1, 1-1 마을 버스를 타면 법기수원지 입구 바로 앞에 도착합니다.
자가용을 이용한다면 법기수원지 주차장 또는 법기수원지로 네비게이션 검색을 해서 오면 되는데, 마을 무료주차장은 법기수원지에서 살짝 떨어져 있으니 법기수원지 앞 민간 주차장을 이용하셔도 괜찮습니다.
*법기수원지 민간 주차장 이용요금
- 선불 2000원
법기수원지는 오전 8시 부터 오후 5시(하계 6시) 까지 개방을 합니다.
출입시 음식물(김밥, 커피, 음료 등) 반입이 되지 않으며 자전거, 반려견, 돗자리 등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가볍게 산책을 하는 곳입니다. 멋진 풍경과 함께 싸온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원이 아니라 수원지를 가볍게 걸으며 함께 온 사람과 대화를 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입구로 들어가서 길 왼편 댐마루, 반송, 화장실 표지판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바퀴 크게 돌아 산책 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쉽게 표현하기 힘든 거대한 수목들이 법기수원지 탐방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데, 이 나무들만 봐도 이곳에 담긴 역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벼락맞은 나무도 있어요).
탐방로 좌우로 곧게 서있는 편백나무들도 심상치 않은 높이로 자라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가능한 이유가 아마 오랜시간동안 일반 공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편백나무의 효능
편백나무(일어로 히노끼)에는 소나무에 비해 5배이상 되는 피톤치드를 함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피톤치드의 주 작용인 향균, 항염작용은 편백나무 근처에서 삼림욕을 하는 것으로 훌륭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주위의 나쁘고 해로운 물질을 제거해 주는 효능이 있다고 하니 이곳은 그야말로 치유의 숲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댐 마루는 과거 만들어진 돌계단으로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대신 좌측으로 데크 계단을 설치해 두어 일반 탐방객들이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높지 않으니 가볍게 올라가 볼 수 있습니다.
법기 칠형제 반송
법기수원지 댐마루에는 7그루의 130여년 된 반송이 있습니다. 이 반송 7그루를 건설 당시(1927~1932)에 어른 20명이 목도하여 댐 위로 옮겨 심었다 하니 심을 당시에 벌써 나무의 수령이 50년 이상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강우규 의사 항일의거 사건
법기수원지에는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가 남긴 글인 '원정윤군생(깨끗한 물은 많은 생명체를 윤택하게 한다)' 이 새겨져 있는데 1919년 제 3대 조선총독 부임을 위해 9월 2일 오후 5시 남대문(현 서울역)에 도착할 당시 환영행사를 마치고 막 관저로 떠나는 사이토 마코토의 마차를 향해 강우규 선생이 폭탄을 투척한 사건입니다. 강우규 의사는 민족의 분노와 독립의 염원을 담아 폭탄을 투척 하였으나 사이토 마코토는 죽지 않고 현장에 있던 신문기자, 수행원, 일본경찰 등 37명의 사상자를 내었습니다. 거사 15일 뒤 일제 앞잡이 한국인 순사에게 붙잡혀 이듬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봄, 가을이 되면 더 멋지게 변할것 같은 장소 법기수원지. 비록 강제동원된 선조들이 일제 강점기 시절 힘들게 만든 아픈 역사가 있지만, 우리는 그 역사를 기억하며 이제는 사람들의 상처를 회복하고 치유해 주는 곳이 되길 간절히 바래 봅니다.
이상 딸아이와 함께한 도심속 산책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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